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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쩐지 퉁퉁대는 그녀를 대하기가 부담스럽다. 아무래도 빨리 그 첫 술 교환의

의미를 떠올리지 않으면 앞으로의 생활이 참으로 위험할 것 같았다.

“그런데 세이르. 백아탑에는 왜 가요?”

“그곳에 일이 있어서요.”

“그 정도는 저도 알아요. 일 없이 여행하는 한량들도 있긴 하지만, 확실한 목표

가 없이는 세계 반대편에 있는 곳을 가지 않을 걸요. 세이르는 아무리 봐도 한량

같아 보이지는 않네요.”

“으음…. 집안일 때문입니다.”

아르사하는 눈을 깜빡거리며 무슨 뜻이냐는 듯이 바라보았고, 나는 쓰게 웃으면

서 사발을 들어 올려 곡주를 한 모금 마셨다.

지구로 귀환하는 것도 집안일이라면 집안일이다.

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집안일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, 하여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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튼 집에 관련된 일임은 사실이다.

“죄송합니다만 그 이상은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.”

“단호하네요. 당신은 그런 이야기만 되면 완곡해져요. 알아요?”

“압니다.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.”

지금 내 웃음이 얼마나 서글프게 보일지는 알고 싶지 않다. 그러나 정체를 숨기

고, 목적을 숨긴 채 여행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수상하게 보일지는 안다.

수상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고 하여도 어쩔 수 없다. 다른 이들과 함께 여행을 하

겠다고 했을 때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.

진실을 요구한다손 쳐도, 쉽게 말해줄 수 있는 내용도 아닐 뿐더러, 말한다고 해

서 믿어 줄지 또한 의문이다.

다른 세계의 리포트 작성을 위해 대마법사의 마법에 얼떨결에 끌려왔다는 걸 누

가 믿을까?

“그 백아탑에 가신다는 목적이 당신의 정체와도 관련이 있는 건가요?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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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예. 그렇습니다.”

“그럼 들을 날도 얼마 안 남았군요. 이제 길어야 석달 안에 백아탑에 도착하실

수 있을 테니까요.”

“언제나 숨기기만 하는 것 같아서 늘 죄송스럽습니다.”

나는 고개를 숙이며 진심으로 사과했다.

그녀는 언제나 날 진심으로 대해주고 있지만, 나는 그것에 답할 수가 없다.

생각해 보자면 그렇게 극구 숨길 필요는 없는 것 같기도 하다. 솔직하게 내가 이

계인이라는 걸 밝힌다고 해도 처음에만 놀랄 뿐, 얼마 지나지 않아 예전같이 날

대할 것이다.

그러나, 만약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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