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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그런데, 옷은 사셨습니까?”

“예. 적당한 옷으로 한 벌 골랐어요. 이거.”

그녀는 발치에 내려놓은 상자 하나를 들어 올려 보였다. 내용물을 열어서 보여준

다던가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길 바랄 뿐이다. 안 그러면

그녀의 무단 탈주가 무의미 할 테니.

아르사하는 상자를 다시 내려놓고서 내 주변을 살펴보고는 물었다.

“세이르는 옷 골랐어요?”

“아뇨. 정장은 처음이라서 헤매는 중입니다. 예산은 12네다 정도로 생각하고 왔

는데, 뭐가 좋을지는 잘 모르겠군요.”

“흐음…. 백인정장 보다도 눌탄 전통복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 하지만… 새 옷을

입는 것도 좋겠죠. 기왕 만난 거, 제가 골라줄까요?”

아르사하는 바짝 기대하는 눈초리로 말했다. 거절하기가 미안해지기 시작하려고

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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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렇게 되면 이건 물음이 아니라 선언이 되어버리는 거잖아.

고르게 하지 않으면 용서치 않으리라는 무언의 압박마저 느껴지는 표정이라, 나

는 어색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.

“그, 그게….”

“네? 괜찮아요. 아무리 제가 전통복에 익숙한 눈이라고 해도, 백인정장 입은 사

람들을 많이 만나봤기 때문에 훨씬 익숙해요. 어때요?”

난처한 웃음으로 무마시키기에는 그녀의 기대가 너무 큰 것 같다. 나는 그녀의

모습에서 대형 의류매장에 옷을 사러 갔을 때 따라 나온 지희와 지선이의 표정을

읽을 수 있었다.

첫 번째 매장에서 입어본 옷을 사기 위해서 열여섯 군데의 매장을 돌아야 했던

악몽 같은 쇼핑의 시간이 떠올랐다. 설마 그녀도 그렇게 하는 건 아니겠지? 나는

약간 뒤로 주춤 하면서 말을 꺼냈다.

“그… 한 시간 이내로… 될까요?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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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한 시간이요? 왜요?”

“일행이 있어서… 같이 가기로 했거든요….”

“아아. 같이 공연 보러 오시나요? 그럼 늦지 않게 해드리죠. 어머나, 그렇게 되

면 빨리 움직여야 하겠네요. 자아! 가욧!”

“우아아?”

혼자서 말하고, 혼자서 판단하고, 혼자서 결론 내린 아르사하는 그녀가 가진 특

유의 행동력으로 자신의 옷상자를 옆구리에 끼고는 내 손목을 잡고서 날 이끌기

시작했다.

한 시간이라… 상당히 바쁜 시간이 될 것 같군.

평소 친구들이 여자친구와 옷을 사러 가면 그것만으로도 녹초가 된다는 말을 듣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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