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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죄송합니다. 잠시 딴 생각을….”

난 얼른 고개를 숙였다. 복잡하게 얽혀진 유리 구조물을 보니 벤타일리칸의 실험

실이 생각났던 것이다. 힐가스는 더듬이를 까딱거리고 이상한 구조의 입을 우물거

려 날 한껏 질리게 만들고는 수레를 돌리라는 손짓을 했다.

손수레를 돌려서 그의 앞에 대령시킨 나는 그가 하는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

었다. 힐가스의 성격상 도움이 필요 없으면 도와달라고 하지 않는다. 도움이 필요

한 일에는 어떻게 무엇을 하라는 확실한 지시를 내린다. 지금 내가 맡은 일은 단

지 수레꾼의 일일 것이다.

힐가스는 유리와 철로 만들어진 도구를 수레에 올려놓았다. 입을 대는 것 같은

작은 취입구가 있는 이 기구는 내부를 알 수 없게 되어있었다.

이것이 아무래도 ‘식기’의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추측을 막연하게 해볼 수는 있을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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것이다. 내가 보지 못한 식사예절 중에는 이런 식기를 필요로 하는 종족들도 있을

지 모르니까.

그 외에 고풍스럽게 만들어진 크고 둥근 낮은 의자와 새 까만 천으로 만들어진

식탁보 같은 것이 손수레에 올려졌다.

손수레가 제법 무거워질 무렵, 힐가스는 자신의 기억과 수레의 물건을 맞춰보는

듯 하더니 더듬이를 까딱였다. 다 되었다는 뜻이다.

“카챠.(가자.)”

나는 힐가스의 손에 들려있는 천과 훤히 드러난 짐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.

저거 천을 다시 포장해야 하는 것 아닌가?

“무어혜?(뭐해?)”

“아뇨, 저거… 다시 포장해야 되지 않나요?”

표정이 없는 요충족의 감정을 읽기란 힘들다. 나를 빤히 바라보는 힐가스의 얼굴

에서는 ‘이놈이 정말 바보인가?’ 내지는 ‘정말로 촌뜨기라서 모르는 건가?’라는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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식의 느낌도 읽어낼 수 없었다.

힐가스는 말하기도 싫다는 듯 몸을 돌려서는 짐을 향해 잘 접힌 천을 휘익 던져

버렸다. 내가 먼지에 눈을 살짝 가릴 때,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.

파라라락! 파박!

공중에서 천이 제멋대로 활짝 펴지더니 그대로 스르륵 가라앉았다. 네 활개를 펼

친 천은 부드럽게 짐들의 위로 가라앉아서는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짐을

감쌌고, 먼지가 털렸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짐들과 마찬가지의 모습을 한 채

뻔뻔하게 그 자리에 있었다.

“카챠.”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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