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“있기를 바라야죠.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.”
난 왼쪽에서 아르사하가 잘 걸어가고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 다시 앞과 밑을 살
피면서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.
아르사하와 난 이 산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다퉜는데, 서로가 앞에 가겠다는 이유
로 다툰 것이다.
그녀의 주장은 이제 다시 길이 나왔으니 자신이 앞서서 안내를 해야 하지 않겠냐
는 것이었는데, 나는 어차피 외길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주장으로 맞받아쳤다. 출
발하지도 않은 채 바람소리가 무색하도록 열을 올리던 우리는 결국 같이 걸어간다
는 결론을 내었다.
길은 넓었고, 굳이 한 사람이 가지 않아도 된다. 그러나 그렇게 되면 둘 다 정면
에서 몰아치는 눈보라에 노출되므로 체력소모가 훨씬 빠르다는 단점이 있지만, 나
나 그녀나 이상하게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.
사람이 좀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는데,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는지 정말 알
수가 없다.
“이대로 가다가는 이 길 위에서 노숙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.”
“노숙하기보다도 그냥 괴수 고기나 먹고 더 전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.”
“괜찮긴 한데… 역시 잠을 자지 않으면 정신이 피곤해져요.”
“그렇긴 하군요. 그럼 안전하다 싶은 장소를 찾은 뒤 실컷 잠이나 자볼까요?”
괴수의 고기는 확실하게 몸을 지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. 어느 정도냐 하면, 잠
을 자는 일이 거북스러울 정도로 몸 상태를 최적의 상태로 끌어올려주었다. 그렇
지만 정신까지 맑게 하진 않았다.
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적 한계는 그렇게 길지 않다.
깨어 있는 시간동안 보고 들은 것은 모두 잠을 잘 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된다.
자고 있는 동안 정신은 끊임없이 움직여서 취할 것을 취하고, 버릴 것은 버리는
식으로 기억을 정리한다. 그런데 만약 잠을 자지 않게 되면 끊임없이 정보를 모아
서 축적밖에 하지 못한 뇌는 금새 지쳐버린다.
지금도 잠을 자지 않고 걸어서 그런지 어제의 일이 조금 전에 일어난 것 같은 느
낌을 준다. 밤새 걸었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, 머리가 띵한 느낌이 들면서 여간 혼
란스러운 것이 아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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