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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단 나는 아래쪽을 살펴보았다. 내려가서 올라오는 길을 찾는 편이 좋을지도 모

르지만, 계곡물이 넘실대 20미터 아래에는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.

지금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일단 위로 올라가는 것이라는 결론

이 나오는데… 거 별로 기쁘지 않은 결론이군.

틈틈이 운동을 하고, 신력강림무도 수련하고 해서 사지육신이 튼튼해진 것이 그

나마 다행이랄까?

발 디딤과 단검을 찔러 넣는 일만 주의한다면 벼랑을 올라가는 일은 크게 어렵진

않을 것 같다. 대신 크게 위험하고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 슬플 따름이다.

내가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잡다한 것들을 조금씩 익혔다고는 해도, 그

중에는 암벽타기 같은 고난이도와 전문성을 요구하는 기술은 없다.

기껏해야 어렸을 때 동네 뒷산에서 몇 미터짜리 돌산을 기어 올라간 경험이 내

암벽타기 경험의 전부다. 지금과 같은 상황은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다.

“빌어먹을. 생각만 해서 어쩌자는 거야?”

결국 나는 몸을 움직이기로 했다.

뭐가 되었든, 무엇이 되었든, 어떻게 되었든 몸을 움직여야 이 상황이 변화하게

된다. 생각만 해서 달라지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어!

일단 나는 오른손의 단검을 뽑아서 좀 거 위쪽으로 찔러 넣을 곳을 찾았다. 가로

로 벌어졌든, 세로로 벌어졌든 아무래도 상관없다. 단검이 들어가서 내 몸무게를

받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해.

한 20센티 위의 세로틈새에 단검을 찔러 넣은 뒤 몇 번 당겨봐서 무게를 잘 견딜

수 있는지를 보았다. 그러고서는 몸을 끌어당기면서 적당히 발을 디딜 곳을 찾는

다. 뾰족한 돌 위에 발이 걸쳐지고, 내 무게를 버틸 수 있다고 확인되면 몸을 위

로 올린다. 이것으로 20센티 전진이다.

이 간단한 동작에만 거의 1분 가까이 시간이 걸린 것 같았다. 내가 추락한 높이

를 최고 40미터라고 치면, 200분의 1의 거리를 올라오는데 1분이다. 그렇다면 완

전히 올라가는데 200분가량 걸린다는 말인가?

그 시간이면 일행이 출발하고도 남는 시간이다.

아냐, 내가 없어졌다는 걸 알면 분명 아르사하나 윌터가 주변을 수색하려고 할

텐데? 아란이 그것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아이일까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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